속독, 다독이니 독서의 방법에 관한 것들이 태어난다. 마치 한 부모에서 서로 다른 자식이 태어나듯이.

진정한 독서는 배우기 위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굽신거리며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저자의 지식에 대해 통렬히 비하하며 자신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와 친구가 되고 대화하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순 없지만, 그 친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고, 어린 아이가 자기전에 부모님이 읽어주시는 동화를 들으며 잠자고 싶은 것처럼 너무나 오래동안 기다려왔던 그 이야기들처럼. 그렇게 되었을 때, 마치 여인을 사랑할 때처럼 다른 지식들이 전부 그 유용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독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