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박지성을 알아본 것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히딩크 감독이다. 체격이 왜소하고 평발인 박지성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강한 체력과 양발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장점을 알아봐준것은 히딩크 감독이었다. 히딩크 때문에 지금의 박지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지성처럼 자기의 분야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 멘토를 찾으라는 말이 있다. 과연 멘토가 필요한건지가 의문이다.

만약 좋은 멘토가 있다면 없을 때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다. 내가 정체기에 들어섰을 때, 내가 어떤 장애물에 가로막혔을 때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간 멘토가 적절한 대답을 해줄 것이다. 따라서 멀리 돌아가지 않고 빠른 시간내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멘토를 직접 연결해주기도 하고 인맥 SNS가 등장하여 자기 분야의 멘토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멘토를 만나는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멘토가 나에 대해 얼마만큼 아느냐가 문제다. 멘토라는 것은 말그대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지 나보다 이 분야를 더 잘 안다고 좋은 멘토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문제에 가로 막혔을 때, 여러 해결책이 있을텐데 그중 나에게 맞는 혹은 내가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보험영업을 하는데 숫기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멘티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숫기가 없어서 영업력이 부족하니 온라인 영업을 해결책으로 내줄 것이다. 그와 반대라면 안되는 영업을 계속 시킬 것이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이라는 좋은 멘토를 만났다. 그래서 자신의 숨겨진 장점을 극대화 시켰고 좋은 기회를 만나 성공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좋은 멘토를 만나기란 길가다 1등이 된 로또를 주울만큼 희박하다. 게다가 좋은 멘토는 내가 어느정도 실력이 있을 때 만날 수 있다. 박지성도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기 때문에 히딩크를 만난 것이다. 아마추어 실력이었다면 절대 히딩크를 만나지 못했다.

이말은 나의 수준의 정도에 따라 멘토가 바뀐다. 물론 처음부터 최고의 멘토는 필요없다. 오히려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멘토가 내 고민을 더 잘 헤아려줄 수 있다. 프로는 이미 나와의 격차가 커서 나의 고민을 벗어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왜 못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그리고 수준이 오르게 되면 그때 다른 멘토를 만나면 된다. 멘토가 꼭 1명을 필요는 없다. 분야에 맞춰서 멘토를 두어도 된다. 인생은 이 사람, 연애는 이사람, 일은 이사람 이렇게 분야를 나누어서 멘토를 갖추어도 된다.

결론적으로 좋은 멘토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잡아라. 하지만 아직 자기 분야에서 수준이 낮다거나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면, 멘토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라.

그 시간에 나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멘토는 내 눈앞에 서있을 것이다.